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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 김에 부적절 발언한 방송인 해고…샌프란시스코 라디오 KNBR

평창 겨울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금메달을 획득한 한인 2세 클로이 김(17·사진 왼쪽)에게 방송에서 성적으로 부적절한 발언을 한 토크쇼 진행자가 즉각 퇴출됐다. 15일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 라디오 방송인 KNBR-AM은 제레미야 크로 프로그램 디렉터가 14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 방송에서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는 패트릭 코너(오른쪽)를 해고한다고 밝혔다. 코너가 전날 위성 라디오 방송 시리우스 XM의 바스툴 스포츠(Barstool Sports) 네트워크에서 클로이 김을 '작고 귀여운 것(a little hot piece of ass)'이라고 표현해 비난 여론이 들끓기 시작한 지 하루 만이다. 이 표현은 섹시하다는 뜻을 외설적으로 나타내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코너는 이날 또 클로이 김의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18세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the countdown is on)"고도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의 비난이 커지자 코너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문제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며 "클로이 김과 그의 아버지에게 즉시 사과하고 싶다"고 밝혔다. 바스툴 스포츠 네트워크의 설립자 데이브 포트노이도 트위터에서 직접적으로 코너를 언급하지는 않은 채 자신의 네트워크가 가끔씩 청취자들을 웃기기 위해 농담을 했다가 실수를 한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코너에 대한 징계는 없어 코너는 바스툴 스포츠에서는 계속 방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올림픽 기간에는 방송인들이 말 실수로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주관방송사인 NBC에서는 개회식에서 해설자 조슈아 쿠퍼 라모가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받고 사임했으며, 알파인 스키 선수 출신으로 이번에 해설을 하고 있는 보드 밀러는 15일 알파인 여자 대회전에 출전한 오스트리아의 안나 파이트가 부진하자 이것이 최근 결혼했기 때문이라고 했다가 거센 반발을 받고 있다.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이 종목 우승자인 파이트는 현재 무릎 부상으로 고전 중이다. 박기수 기자 park.kisoo@koreadaily.com

2018-02-15

"평창서 금메달 딸래요" 클로이 김 '7년 전 다짐' 실현

지난 13일(한국 시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클로이 김(17)양이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남다른 감회로 지켜본 이들이 있다. 불과 3년쯤 전, 토런스로 이사하기 전까지 김양이 살았던 라팔마의 시민들이다. 김양은 롱비치에서 태어났지만 라팔마에서 성장기 대부분을 보냈다. 4살 때 아버지 김종진씨를 따라 스노보드를 시작한 김양은 불과 2년 만에 '전미 스노보드 연합회(USASA) 내셔널 챔피언십'에 첫 출전, 동메달 3개를 따내며 종합 3위를 차지했다. 6살에 불과한 김양이 '스노보드 신동'으로 불리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이 때다. 김양의 쾌속항진은 멈출 줄 몰랐다. 2008년 콜로라도 카퍼마운틴에서 열린 '전미 스노보드 연합회(USASA) 전국 챔피언십' 6~7세부문에서 금매달 2개와 은메달 3개를 획득, 종합 1위에 등극했고 같은 해 스위스 주니어 오픈에서는 일반 성인들도 어려워하는 하프파이프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될성부른 떡잎이었던 김양은 10살이었던 2011년 8월 2일, 라팔마 시의회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김양이 달성한 많은 성취를 격려하고 더 훌륭한 선수가 되라고 격려하기 위한 취지의 표창장이었다. 당시 랠프 로드리게스 시장, 스티브 황보 시의원에게 표창장을 받아든 김양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훗날 예언이 된 한마디를 남겼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돼 7년 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힌 것이다. 자신의 키 만한 높이의 보드를 들고 포즈를 취한 김양은 당시 "가슴에는 태극기 대신 성조기가 있겠지만 부모님의 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올림픽에 꼭 출전하고 싶어요. 7년 동안 꾸준히 연습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본지 2011년 8월 4일자 A-20면> 당시 황보 시의원은 "클로이가 올림픽에 출전한다면 라팔마 시민들이 모두 한마음이 돼 응원할 것이다. 꾸준히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간다면 어느 새 올림픽 무대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라고 김양을 격려했다. 7년이란 시간이 훌쩍 흘렀고 김양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그를 기억하는 많은 라팔마 시민들은 여전히 그를 '라팔마의 자랑'으로 여긴다. 황보 전 라팔마 시장은 "7년 전, 김양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참으로 당찬 소녀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금메달을 따냈다. 정말 장하다"라고 말했다. 임상환 기자 limsh@koreadaily.com

2018-02-14

"뭐든 재미있게"…하루 19시간 훈련 즐겨

13세 때 최연소 국가 대표 꿈은 '스포츠 에이전트' 부친 직장 그만두고 헌신 "용띠 딸 '금 여의주' 물어" 스노보드 '천재 소녀' 클로이 김(17)이 13일(이하 한국시간) 평창 휘닉스 스노우파크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금메달을 땄다. 2000년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서 한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그는 1차 시기에서 93.75점으로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은 뒤 3차 시기에서 98.25점(100점 만점)을 기록하면서 2위 류지아유(중국·89.75점)을 큰 점수 차로 따돌렸다. 언론은 클로이 김이 이날 독보적인 실력으로 금메달을 따낸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미국 스노보드의 센세이션(UPI)' '골든 걸(golden girl·ABC방송)' '겨울의 여왕(AOL)' 등 온갖 수식어를 붙이며 그의 기량을 칭찬했다. 압도적인 기량 못지 않게 생기 넘치고 발랄한 태도가 미국 내에서 주목을 끌었다. 클로이 김이 트위터에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하자 미국올림픽위원회는 "아이스크림이 클로이를 살렸다"는 내용을 리트윗했다. 클로이 김은 슬로프에만 서면 냉정한 승부사로 변신한다. 그는 13세 때 미국 최연소 스노보드 국가대표에 뽑혔다. 월드 스노보드 투어(2014년), 겨울 익스트림게임(2015년)에서도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면서 일찌감치 '스노보드 천재 소녀' 로 불렸다. 2016년 2월 US그랑프리에선 여자 선수 최초로 1080도 회전을 잇달아 성공시켜 100점 만점을 받기도 했다. 2016년 주간지 타임은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명' 중 한 명으로 그를 선정했다. ESPN은 평창올림픽 직전 표지모델로 클로이 김을 선정했다. 클로이 김의 성장한 배경에는 아버지 김종진(62)씨의 헌신이 있었다. 26세이던 1982년 미국으로 건너간 김씨는 주유소와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면서 공과대학을 다녔다. ESPN은 20대 초반 달랑 800달러를 들고 미국에 건너가 아메리칸 드림을 일궈낸 김씨의 스토리를 상세하게 소개하기도 했다. 클로이 김은 4세 때 아버지를 따라 스노보드를 시작했다. 아버지 김씨는 딸이 재능을 보이자 25달러 짜리 스노보드를 사줬다.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양초를 녹여 스노보드에 발라주기도 했다. 그러다 2007년엔 아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딸과 함께 스위스로 스키 유학을 떠났다. 클로이와 김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1시에야 집에 돌아오는 일상을 2년간 반복했다. 미국에 돌아가서도 김씨는 하루 6시간씩 차를 운전하면서 딸의 뒷바라지를 했다. 클로이 김이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는 순간을 현장에서 지켜본 아버지 김씨는 딸이 용띠(2000년)에 태어났다며 "클로이가 드디어 금으로 만든 여의주를 물었다. 꿈이 이뤄졌다"며 감격해했다. 클로이 김의 생활 신조는 "다른 사람이 뭐라 해도 신경 쓰지 말라. 재미있게 즐기라"는 것이다. 장차 법과 경영을 전공해서 스포츠 에이전트가 되는 게 꿈이다. 아버지 김씨는 딸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강조한다. 김씨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클로이의 핏줄은 100%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클로이 김은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이제 두 나라를 모두 대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며 "부모님의 나라에서 금메달을 따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김지한 기자

2018-02-13

"나는 미국과 한국의 대표다"

스노보드 ‘천재 소녀’ 클로이 김(한국 이름 김선·17세)이 미국인들의 국민 여동생으로 떠올랐다. 한인 2세인 그의 올림픽 금메달 소식에 온 미국이 떠들석하다. 2000년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서 한국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클로이 김은 13일(한국 시간) 평창 휘닉스 스노우파크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여자 하프파이크에서 금메달을 땄다. 다른 선수들과 비교할 수 없는 눈 부신 연기를 펼치며 만점에 가까운 98.25점(100점 만점)을 기록했다. ABC 방송을 비롯한 언론들은 이날 클로이 김이 독보적인 실력으로 금메달을 따냈다며 극찬했다. ‘골든걸(Golden Girl·ABC)’ ‘미국 스노보드의 센세이션(UPI) ’겨울의 여왕(AOL) 등 그의 기량을 칭찬했다. 클로이 김은 금메달을 딴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한국을 모두 대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큰 영광이다”고 말했다.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가족이 큰 도움이 됐다는 그는 하프파이크 결승 3차 시기를 할머니에게 헌사했다. 1차 시기에서 93.75점을 받아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은 그는 마지막 3차 시기에서 자신의 최고 기량을 보여주겠다는 각오와 함께 “내 경기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할머니를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서울에 사는 할머니는 그의 경기를 보기 위해 이날 평창 휘닉스 스노우파크를 찾았다. 클로이 김의 성장 배경에는 아버지 김종진(62)씨의 헌신이 있었다. ESPN은 20대 초반 달랑 80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와 아메리칸 드림을 일궈낸 김씨의 스토리를 상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클로이 김은 4세 때 아버지를 따라 스노보드를 시작했다. 아버지 김 씨는 딸이 재능을 보이자 25달러 짜리 스노보드를 사줬다.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양초를 녹여 스노보드에 발라주기도 했다. 김 씨는 하루 6시간씩 차를 운전하면서 딸의 뒷바라지를 했다. 클로이 김이 하프파이프 결승 3차 시기를 하기 전 김 씨가 딸에게 보낸 문자는 ‘이무기(Imugi)’였다. 용띠(2000년)해에 태어난 클로이에게 김 씨는 "이번 올림픽에서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이 되라"고 말해 왔다. 딸이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순간을 현장에서 지켜본 김 씨는 “클로이가 드디어 금으로 만든 여의주를 물었다. 꿈이 이뤄졌다”며 감격해했다. 13세 때 미국 최연소 스노보드 국가대표에 뽑힌 클로이 김은 월드 스노보드 투어(2014년), 겨울 익스트림게임(2015년)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면서 일찌감치 ‘스노보드 천재 소녀’로 불렸다. 2016년 2월 US 그랑프리에선 여자 선수 최초로 1080도 회전을 잇달아 성공시켜 100점 만점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남자선수들이 하는 기술을 구사하는 유일한 여자 선수로 평가받는 클로이는 압도적인 기량 못지 않게 생기 넘치고 발랄한 태도로 주목을 끌고 있다. 예선전에서는 1차 시기가 끝난 뒤 트위터에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올렸다. 그러자 곧 미국인들은 리트윗에서 “클로이에게 무슨 아이스크림을 줘야 하느냐”며 고민에 빠졌다. 미국올림픽위원회는 ‘아이스크림이 클로이를 살렸다“는 내용을 리트윗하기도 했다. 결승전에서는 3차 시기 순서를 기다리면서 ’아침에 나온 샌드위치를 다 먹지 않은 게 아쉽다. 지금 배가 고프다(Wish I finished my breakfast sandwich...I‘m hangry.)라고 트윗을 했다. NBC 방송사는 다음 날 오전 모닝쇼에 클로이를 게스트로 초대해 아이스크림과 샌드위치 등을 대접했다. 장차 법과 경영을 전공해서 스포츠 에이전트가 되는 게 꿈인 클로이 김은 ”다른 사람이 뭐라 해도 신경 쓰지 말라. 재미있게 즐기라“는 것을 생활 신조로 삼고 있다. 미국의 여느 틴에이저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생각을 갖고 있지만 부모님의 나라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나서는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게 됐다. 클로이 김은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이제 두 나라를 모두 대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며 ”부모님의 나라에서 금메달을 따 더욱 뜻 깊다“고 말했다. 최수진 기자 choi.soojin1@koreadaily.com

201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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